| 명칭 | 주소 | 건립 | 설명 |
|---|---|---|---|
| 운현궁 雲峴宮 Unhyeongung Palace 별칭: 구름재 궁 雲峴宮 (구름재[雲峴]에서 유래) Cloud Pass Palace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 (운니동 114-10) 좌표: 37.5742, 126.9871, 37m |
1863 철종 14년 / 고종 즉위년 |
운현궁은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의 잠저(潛邸)이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과 여흥부대부인 민씨(驪興府大夫人 閔氏)가 거주하던 사저(私邸)이다. 궁호(宮號) '운현(雲峴)'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구름재[雲峴]'에서 유래하였으며, 조선시대 천문관측기관인 서운관(書雲觀) 앞의 고개라는 뜻을 담고 있다. 1863년(철종 14) 고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고 흥선군이 흥선대원군으로 봉작(封爵)되면서 본격적으로 '운현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가례(嘉禮)가 이곳에서 거행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은 10여 년간 이곳에서 섭정하며 서원 철폐, 호포제 시행, 경복궁 중건 등 주요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대원군의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 중심 건물인 노락당(老樂堂), 안채인 이로당(二老堂)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고, 1991년 서울특별시에 양도된 후 1993년부터 보수·정비되어 현재에 이른다. 1977년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
| 국사당 國師堂 Guksadang Shrine (Inwangsan) 별칭: 인왕산 국사당 / 목멱신사 仁王山 國師堂 / 木覓神祠 Inwangsan Guksadang / Shrine of Mokmyeok Great King |
서울특별시 종로구 무악동 산 2-1 (인왕산 선바위 아래) 좌표: 37.5786, 126.9612, 182m |
1396 태조 5년 (남산 신격화 기준) / 현 위치 이전: 1925년 (일제강점기) |
국사당(國師堂)은 서울을 수호하는 무속 신당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무학대사(無學大師)·공민왕 등 여러 신격을 모시는 사당이다. '국사(國師)'라는 명칭은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하며, 헌종 대 학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국사당'이라는 명칭과 무신도(巫神圖)의 기록이 남아 있다. 원래 남산(南山) 정상, 현재 팔각정 자리에 위치하였으나, 1925년 일제가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립하면서 국사당이 신사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문제 삼아 이전을 강요하였다. 이에 원래의 자재를 그대로 옮겨 인왕산 선바위(禪巖) 아래 현 위치에 원형 복원하였다. 인왕산이 이전 장소로 선택된 것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라는 전승 때문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이전 후 양 끝에 각 1칸씩을 증축하여 현재 정면 5칸이 되었다. 내부에는 금단청(金丹靑)이 시공되어 있으며, 삼면에 무신도가 걸려 있다. 현재도 내림굿·치병굿·재수굿 등 무속 의례가 행해진다. 1973년 7월 16일 국가민속문화유산 제28호로 지정되었다. |
| 장충단비 奬忠壇碑 Stele of Jangchungdan Altar 별칭: 장춘단비 奬忠壇碑 (이칭: 장춘단비) Stele of the Altar of Encouraging Loyalty |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장충단공원 내 (장충동 2가, 수표교 서편) 좌표: 37.5606, 127.0058, 32m |
1900 광무 4년 (高宗 명에 의해 장충단 조성 시 함께 건립) |
장충단비(奬忠壇碑)는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일본인을 물리치다 순사(殉死)한 시위대장 홍계훈(洪啓薰),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 및 여러 장졸(將卒)들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제단 '장충단(奬忠壇)'에 세운 기념비이다. 광무 4년(1900) 9월 고종의 명으로 조선시대 남소영(南小營) 터에 장충단과 사당이 건립될 때 비석도 함께 세워졌다. 비석은 사각 받침돌 위에 비신(碑身)을 올린 간결한 형식이며, 앞면의 '奬忠壇(장충단)' 세 글자는 뒤에 순종(純宗)이 된 황태자의 예필(睿筆)이고, 뒷면에는 당시 육군부장(陸軍副將)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이 짓고 쓴 143자의 찬문(撰文)이 새겨져 있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일제가 비석을 뽑아 버리고, 1920년대 후반에는 장충단 일대를 '장충단 공원'이라는 이름의 위락 시설로 변모시켰다. 광복 후 비를 다시 찾아 영빈관(현 신라호텔 자리) 내에 세웠으며, 1969년 현재의 자리인 장충단공원 내 수표교(水標橋) 서편으로 이전하였다. 1969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