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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불에 타도 살아남은 기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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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보존 역사는 전쟁과 화재 속에서도 기록을 지키려 한 조선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실록은 편찬 완료 후 춘추관(春秋館)과 전국 각지의 사고(史庫)에 분산 보관되었는데, 조선 초기에는 춘추관을 포함하여 충주·전주·성주 사고 등 4곳에 보관하였다. 이러한 분산 보관 체계는 화재나 전란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실록의 영구 보존을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당시 전주사고를 제외한 모든 사고의 실록이 전화(戰火)에 소실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전주사고본이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전주 유생(儒生) 안의(安義, 1529-1596)와 손홍록(孫弘錄, 1537-1600) 등이 실록을 내장산(內藏山)으로 옮겨 숨겼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조선 전기 실록의 원형이 보존될 수 있었으며, 전란이 끝난 후 1603년(선조 36)부터 1606년(선조 39)까지 이 실록을 바탕으로 4부를 다시 인쇄하여 사고에 분산 배치할 수 있었다. 전란의 경험을 통해 조선은 사고의 입지를 재검토하였고, 1603년(선조 36)부터 보다 안전한 위치에 새로운 사고 체계를 구축하였다.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평안도 묘향산(妙香山), 강원도 오대산(五臺山), 경상도 태백산(太白山)의 4대 산중 사고에 실록을 보관하였다. 이후 정족산(鼎足山), 적상산(赤裳山) 등으로 위치가 조정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사고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들 사고는 모두 접근이 어려운 깊은 산속에 위치하여 외침이나 화재로부터 안전하였고, 사고를 관리하는 승려들에게는 군역 면제 등의 특권이 주어졌다. 각 사고에서는 정기적으로 포쇄(曝曬) 작업을 실시하여 실록을 햇볕에 말리고 보수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1910-1945)와 한국전쟁(1950-1953)을 거치며 실록은 다시 수난을 겪었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일제에 의해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었고, 오대산본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관동대지진(1923)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일부가 반환되었다.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중 북한으로 옮겨져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조선왕조실록은 국립고궁박물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고전번역원 등을 통해 디지털화되어 온라인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 불과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을 지키려 한 선조들의 헌신과 지혜를 보여주는 인류 문화유산의 귀중한 보고(寶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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