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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2025 가을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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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개인사와 학문적 여정== ===질문 01. 특수 이력: 인문학과 정보기술의 융합=== 【허】 먼저 선생님의 학문적 여정 전반에 관해 여쭙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인문학과 정보기술의 융합을 개척해 오셨습니다. 1980년대와 지금의 디지털 인문학 환경을 비교한다면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지, 또 당시 인문학자가 정보기술을 만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편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제가 여러 글에서 다뤘던 주제 중 하나가 ‘인문학 자료의 정보화’와 ‘디지털 인문학’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입니다. 예전에 디지털 인문학을 공부하는 한 학생이 자신의 연구 발표 자리에서 “이 분야의 인문학 지식을 디지털적인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직 충분히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자신이 그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는데, 이를 들은 기성 연구자가 “이미 다 되어 있는데, 안 돼 있다니 무슨 말이냐”고 반론을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둘 사이의 어긋남은, ‘디지털’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 의미와 내용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 되어 있다”는 말은, 디지털 미디어에서 해당 분야의 중요한 학술 자료들을 검색하고 다운로드해 연구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맞는 지적이지요. 우리나라에서 한때 ‘정보화’라고 불렸던 디지털라이제이션은, 주로 정보기술자의 힘을 빌려 특정 분야의 자료를 디지털 환경에서 접근 가능하도록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반면, 우리가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은 단순히 연구 자료를 기술자에게 맡겨 디지털 문서로 전환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미 디지털화된 자원을 바탕으로, 인문학자가 직접 디지털적 방법으로 연구하고, 교육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활동 전체를 의미합니다. 아날로그 자료를 디지털상에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디지털라이제이션과 혼동되지 않도록, 디지털 환경 안에서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융합적 연구·교육 활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노력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 digitalization: 정보기술자의 도움으로 아날로그 자료를 디지털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 * digital transformation: 인문학 연구자가 디지털 환경 자체를 활용해 연구·교육·실무 활동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지식을 확장하는 일 질문하신 1980년대의 상황에서, 그 시대의 과업은 분명 디지털화(digitalization)였습니다. 당시 연구자들이 도서관에서 어렵게 자료를 찾아 복사해 오던 일을 CD-ROM이나 온라인 환경에서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핵심이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는 것뿐 아니라, 그 내용을 해석하고 추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생성하는 일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변화를 가속화한 것이 오늘날의 인공지능입니다. 결론적으로, 80년대의 인문학 자료 전산화는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연구 편의성과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적 활용으로서의 디지털이었고, 수행 주체도 대부분 정보기술자였습니다. 반면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그 자체가 연구·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 즉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은 기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환경 속에서 인문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현재 우리가 집중하는 과제입니다. 【허】 말씀을 들으니 개념 구분이 훨씬 명확해집니다. 80년대의 작업을 포함해 지금도 두 범주를 구별할 필요가 있는데, 선생님께서 디지털화(digitization/digitalization)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차이를 명확하게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 차원에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몇 년 전 3·1운동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관련 자료를 광범하게 디지털화했는데, 선생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디지털화’에 해당하고, ‘디지털 전환’은 연구자들이 그 자료를 활용해 관계를 설정하거나 구조화된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단계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개별 연구자들이 각자의 수준에서 활용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 말씀하신 3·1운동 자료의 경우, 다양한 출처의 사건 기록뿐 아니라 공간 정보, 인물 정보, 이후의 후속 정보―예컨대 관련 인물들이 어떤 죄목으로 어떤 처벌과 감시를 받았는지, 해방 후에는 어떤 상훈을 받았는지, 각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지의 사적 지정 현황은 어떠한지 등―상당히 많은 관련 자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방대한 자료를 망라적으로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디지털 미디어에서 접근 가능하도록 만드는 디지털라이제이션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 미완의 과제입니다. 이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 당면 목표이지만,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이후의 단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이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려 할 것이고, 학생·유튜버·문화 창작자들은 그 자료 속의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중 콘텐츠를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1980년대의 디지털라이제이션이 ‘고객이 이용하기 전 단계’까지의 디지털화였다면, 오늘날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고객(연구자·학생·대중)이 그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지식과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물도 다시 디지털 자원으로 축적되어 해당 분야의 디지털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도록 만드는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두 작업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디지털라이제이션은 대부분 정보기술자가 수행했던 반면, 오늘날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인문학자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21세기의 인문학자는 인문 지식의 전문가일 뿐 아니라, 자기 분야의 지식 자원을 디지털적으로 운용·확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저는 디지털 인문학을 전통적 인문학이 “미래를 위해 갈아입어야 할 옷”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질문 02. 학문적 정체성: 철학 연구와 디지털 방법론의 연결점=== 【허】 앞서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을 주체의 관점에서도 명확히 구분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질문은 선생님의 학문적 정체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원래 연구하셨던 조선시대 성리학과 한국철학의 학문적 뿌리가, 선생님께서 개척해 오신 백과사전적 아카이브 구축, 시맨틱 데이터 편찬, 디지털 인문학 방법론 정립 등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인문학적 사유가 디지털 방법론과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서 일부 언급해 주신 바도 있지만, 이번엔 그 지점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인공지능’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는 대학 전공으로 인문학을 택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박사 과정 중이던 1985년에 컴퓨터 기술 연구자로 KAIST에 취직했습니다. 이후로는 인문학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은 아니죠. 그럼에도 인문학 공부를 통해 인문학적 사고의 기초를 닦은 덕분에, IT 기술 세계에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들—특히 요즘 인공지능이 던지는 문제들—을 접했을 때 스스로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고,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에는 수없이 많은 문화적·기술적 트렌드가 생겨나고, 급속히 변화하고,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지치고, 어느 순간 스스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현상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이 변화가 나와 세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내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사고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인문학 공부의 가장 큰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철학 전공이 제가 해 온 디지털 기술적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물으셨지만, 저는 오히려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과정에서 과거 인문학이 추구해 온 바가 무엇이었는지, 미래 인문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 존경했던 스승님들께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인문학이란 정답을 찾는 학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문제를 발견하는 학문이다. 답을 찾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드러난다. 그 끝없는 여정이 바로 인문학적 탐구다.” 당시엔 그 말의 깊이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를 통해 인문학 지식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그 뜻을 점점 더 공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기대하며 데이터를 정리하고 컴퓨팅 프로세스를 가동합니다. 결과는 나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만족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인풋 데이터가 얼마나 부족하고 편중되어 있었는지”, “문제 정의가 얼마나 모호하고 치밀하지 못했는지”를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발견이며, 더 의미 있는 인문학적 탐구의 출발점이지요. 몇 번의 컴퓨팅 과정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성급히 결론을 내리고 일을 마무리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바탕으로 다시 문제를 정의하고 지식 탐구를 이어가는 것—이것이야말로 과거 인문학 선배들이 ‘말’과 ‘글’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던 인문학적 탐구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허】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잘 이해가 됩니다. 현재 인문학 연구, 특히 디지털 인문학을 포함한 인문학 연구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판단의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일, 둘째,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추구하는 방법론적 과정입니다. 컴퓨팅 프로세스에서는 문제 정의와 결과의 차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다음 연구 질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구조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겠네요. 이 점에서 인문학 연구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디지털 인문학 방법론이 그 과정을 더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질문 03. 연구 과정의 어려움과 극복=== 【허】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겪으신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한 과정에 관한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 디지털 인문학의 기반을 닦으신 개척자로, ‘최초의 길’을 걸어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의 기술적 한계에도 직면하셨을 것 같고, 아까 잠깐 언급하셨듯 전통 인문학계의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주변을 설득해 나가셨는지, 그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김】 남들이 흔히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늘 쉽지 않지요. 돌이켜보면,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꽤 많이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서는 늘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그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곤 하는데, 사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어려움 그 자체보다는, 제가 하는 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생소하게 느끼는 상황에서도 저를 믿고 협조해 준 분들 덕분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KAIST 연구원으로 처음 들어갈 때, 저는 제출 서류 목록에도 없는 장문의 지원 사유서를 첨부했습니다. “인문학, 그것도 동양철학을 전공한 내가 왜 컴퓨터공학 연구원이 되려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85년 KAIST 시스템공학연구소 연구원 공채 경쟁률은 100:1이 넘었다고 하는데, 제가 최종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 연구자들이 제 이야기에 호기심과 신뢰를 가지고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KAIST에서 데이터베이스와 뉴미디어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7년 동안 쌓고, 이후 민간 기업인 ‘서울시스템’으로 옮겨 ‘조선왕조실록 CD-ROM’을 만들었습니다. A4 두 장짜리 사업계획서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서울시스템 이웅근 회장님의 이해와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1997~1999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고학력 실업자 구제 정책의 하나로, 공공기관이 보유한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대규모 정보화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남궁석 장관께 국사편찬위원회, 민족문화추진회(현 고전번역원),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등이 보유한 대규모 한문 고전 자료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했고, 장관과 관료들이 즉각 호응해 주셔서 이 일이 성사되었습니다. 이것이 2000년대의 역사정보통합시스템, 그리고 현재의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지요. IMF 여파로 서울시스템이 사업을 중단한 뒤에는, KAIST 시스템공학연구소의 후신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인터넷 기반 과학기술 정보 유통체계 구축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틈틈이 인문학과 정보기술을 잇는 작업을 이어 갔습니다. 특히 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 실리는 한문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구조화하고, 검색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보급했는데,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한문 고전 데이터 상당수가 XML 기반 데이터로 생산되어 오늘날 인공지능 친화적인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KISTI 조영화 원장과 동료 연구원들은 “과학기술 정보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제 일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었습니다. 2004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오게 된 이후의 여러 사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던 XML 기반 하이퍼미디어 데이터로 편찬한 일, 민간 포털과 협력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를 구축한 일, 전국 각지에 권역별 고문헌 자료센터를 설치하고 자료 공유 네트워크를 구축한 일, 그리고 인문정보학 석·박사 과정 개설까지— 이 모든 일은 당시에는 내용도 생소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업이었음에도, 역대 원장님들과 선배 교수님들이 “미래의 방향일 것 같다”는 막연한 신뢰를 가져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일을 시도할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틀에 없던 일을 할 때 꼭 적극적인 후원이나 격려가 없어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열린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기억나는 “어려움”이라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허】 네, 잘 들었습니다. 우문에 현답을 주셨습니다. 김바로 선생님도 여기 계시지만, 저희도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검토하고 결재하거나 승인하는 입장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생각이 듭니다. 낯설고 판단하기 어렵고 처음 접하는 일을 ‘허용’하거나 ‘방임’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겠지요. 선생님께서 직접 강조하시진 않았지만, 그런 신뢰를 쌓으며 길을 개척해 오신 과정이 분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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